약혐) 스페인 내전 당시 좌익 공화파의 성직자 대학살

약혐) 스페인 내전 당시 좌익 공화파의 성직자 대학살

Toiss 큐레이션: dogdrip, arca, ruliweb 등 4개 출처에서 감지된 이슈를 출처 수, 조회 1, 댓글 4, 추천 1 신호로 묶어 검토했습니다. 스페인 내전(1936~1939) 당시 적색테러 반성직자 폭력은 전쟁 초기 공화파 지역에서 벌어진 대규모의 종교 박해였다. 총 약 6,800~7,000명의 가톨릭 성직자가 살해되었는데 역사학자들은 이를 20세기 유럽 최대 규모의 반가톨릭 학살로 평가한다. 당시 스페인의 가톨릭 교회는 오랫동안 우익 측인 왕정, 지주, 보수 세력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좌익 측 급진적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 일부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은 교회를 혁명의 장애물로 보았다. 내전 발발 후 공화파 측에서는 성직자를 “반동”, “파시스트 협력자”, “민중 억압 세력”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했다. (처형당한 수녀) 대부분의 학살은 1936년 7월 군부 쿠데타 직후 공화국 정부의 통제력이 무너지자 몇 달 동안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즉 정부 차원에서 벌어진 학살은 아니다) 공화파가 통제하는 지역에서 급진적인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민병대 등이 사제, 수도자 등 성직자들을 마구잡이로 즉결처형했다. 바스크 지역처럼 가톨릭 성향이 강한 일부 공화파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수도원과 성당은 방화되었으며 성상과 십자가는 파괴되었고 종교 유물들은 훼손되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수도원 등에서 성직자들의 무덤을 파헤쳐다가 공개적으로 시신들을 훼손하고 조롱하기도 하였다. 지역 사회에서 영향력이 큰 성직자일수록 잠재적인 반혁명 지도자로 간주되어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고 하며 우익과 결탁한 성직자들 뿐만 아니라 단순히 사회봉사에 전념하거나 프랑코를 반대하던 성직자들도 희생양이 되었다. -나발모랄의 신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형을 패러디한 방식으로 고문을 당했다. 고통이 끝난 후 민병대원들은 실제로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을지 아니면 그냥 총살할지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결국 총살로 마무리되었다. -일부 수녀들은 총살당하기 전 민병대원들에게 강간당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시엠포수엘로스의 신부는 투우용 소들이 있는 우리 안에 던져져 뿔에 받혀 의식을 잃었다. 이후 투우사가 성공적인 투우 후 받는 전리품을 흉내 내어 그의 귀 한쪽이 잘려나갔다. -시우다드 레알에서는 한 신부가 거세당했고, 그의 성기가 입에 쑤셔 넣어졌다. -가톨릭 교회와 관련된 사람들이 묵주 알을 강제로 삼키게 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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