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전후에도 출세해서 사람죽인 악질 부역자

프랑스에서 전후에도 출세해서 사람죽인 악질 부역자

Toiss 큐레이션: dogdrip, ruliweb, arca 등 5개 출처에서 감지된 이슈를 출처 수, 조회 1, 댓글 1, 추천 1 신호로 묶어 검토했습니다. 모리스 파퐁 (Maurice Papon) 프랑스의 전직 관료, 경찰, 정치인으로 유대인 추방에 앞장서다가 종전 후에도 처벌받지 않고 출세하여 독립을 요구하는 알제리 사람들을 가혹하게 탄압한 인물이다. 파퐁은 나치 독일 점령기 프랑스 지롱드 지방(보르도)에서 비시 정권의 경찰 총국 사무국장으로 일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유대인 약 1,600여 명을 강제수용소로 이송하는 행정 절차를 총괄했으며, 이들 대부분이 아우슈비츠에 보내져 살해당했다. 그리고 파퐁은 1942년 7월까지 204개 회사를 '비유대화'시켰고, 유대인 소유의 토지 64개를 매각했으며, 493개의 다른 기업을 ' 비유대화'하는 과정에도 참여했다. 놀랍게도 파퐁은 전쟁 후에도 처벌받지 않고 프랑스 관료 사회에서 계속 승진했다. 파퐁은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는 뻔뻔하게도 자기가 레지스탕스에 가담했다는 거짓 증명서를 만들며 자기가 적극적으로 가담한 것마냥 가장했다. (드골은 부역자인걸 알았다고 한다) 파퐁은 민간인에 대한 고문을 포함하여 알제리인들의 독립운동 탄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였다. 파리 경찰청장이 된 파퐁은 1958년 5월에 있던 쿠데타 모의에도 참여했는데, 이 쿠데타는 드골의 대통령 집권의 기반이 되었다. 이후 1961년 7월 12일에 파퐁은 샤를 드골 대통령에게 '국가에 봉사한 공로'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았다. 파리 경찰청장 재임 중 그는 폭력진압으로 특히 악명이 높았는데, 1961년 10월 17일 알제리 독립전쟁 관련 시위를 벌이던 알제리인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폭력 진압을 지휘했다. 공식발표 48명, 최대 200명의 시위대가 살해되고 센 강에 시신이 버려진 것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프랑스 정부가 수십 년간 은폐하다시피 했다. 이후 1962년 샤론 지하철역 학살에서도 좌파 시위대 8명이 죽고 250명 이상이 다쳤다. 1981년, 당시 예산장관이었던 파퐁의 과거가 언론에 폭로되었다. 특히 Le Canard enchaîné가 비시 시절 그가 서명한 문서들을 공개하면서 사건이 크게 터졌다. 이 기사에는 파퐁의 생존자가 공개한 파퐁이 서명한 문서들도 공개되어 있었다. 파퐁은 좌파들의 정치적 음모라고 주장하며 적반하장으로 자신의 피해자들을 자신에 대한 '비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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