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 고모할머니 이름 = 안 기누코, 도쿄여자의과대학 재학

하영 고모할머니 이름 = 안 기누코, 도쿄여자의과대학 재학

Toiss 큐레이션: bobaedream, dmitory, theqoo 등 5개 출처에서 감지된 이슈를 출처 수, 조회 1, 댓글 86, 추천 0 신호로 묶어 검토했습니다. 안상호, 그 부인인 가와구치 이소코, 장녀 안 기누코, 장남 안정호, 하영 조부인 안부호 등등 1928년 1월 5일자 매일신보 고(故) 이태왕(고종 황제) 전하의 어의(어전 의사)로 재직했으며, 작년 10월부터 창덕궁 흥복헌 뒤편 안국동 3가 16번지 병원에서 치료를 하던 의사 안상호 씨는 약 3주 전부터 신장염으로 고생하다가 지난 12월 31일 밤 12시경 자택에서 별세했습니다. 안상호 씨는 메이지 31년(1898년)에 한어(중국어) 관립 한학 외국어학교를 제1회로 졸업했습니다. 그 후 메이지 35년(1902년)에 도쿄 자혜의원 의학교를 졸업하고, 메이지 37년(1904년)에 전(前) 한국 관립 의학교 교관으로 임명되어 주임 6등의 직급에 올랐습니다. 융희 원년(1907년)에는 의친왕궁 의관에 임명되었고, 융희 4년(1910년) 3월에는 이왕직 궁내부 시종원 부전설(종6품 관직)에 임명되었습니다. 다이쇼 3년(1914년) 3월에는 궁내부 내부 시종원 부전설을 사임했습니다. 그 후 다이쇼 15년(1926년) 10월 1일 자로 이왕전하로부터 칙임관(고위 관료) 대우로 종4위에 서임되고 훈3등 태극장을 수여받았습니다. 다이쇼 4년(1915년)부터 현재 살고 있는 안국동 자택에 병원을 개업하여 약 20년 동안 많은 환자를 치료하며 의학계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이외에도 경성 부의회 의원, 경기도 농회 평의원, 경성 운로 금융조합 이사 등으로 재임하며 공익 사업에도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안상호 씨는 처음에는 가정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못했으나, 병원을 개업한 이래 자수성가하여 현재는 수천 석의 거부(큰 부자)라는 칭송을 듣고 있습니다. 시흥군 안양리(현 안양시)에는 그가 소유한 토지를 소작하는 소작인들이 세워준 돌로 만든 송덕비가 있습니다. 그의 가정생활을 살펴보면, 22년 전에 도쿄에서 결혼한 일본인 아내 '이소(磯)' 여사는 부덕(여성의 미덕)을 갖춘 인물로, 슬하에 4남 3녀의 7남매를 두었습니다. 안상호 씨는 조선인으로서 가장 먼저 일본인 부인을 맞이한 선구자였습니다. (뒤를 이어) 장녀 '기누고(당시 20세)' 양은 현재 도쿄여자전문의학전문학교 에 재학 중이며, 장남 '정호(당시 17세)' 군은 용산중학교 에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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