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레지스탕스에서 나치 앞잡이로 변절한 배신자

Toiss 큐레이션: arca, ruliweb, fmkorea 등 4개 출처에서 감지된 이슈를 출처 수, 조회 1, 댓글 0, 추천 3 신호로 묶어 검토했습니다. 체코 레지스탕스의 일원이었던 카렐 추르다 (Karel Čurda) 1911년생. 체코슬로바키아군 출신으로 1939년 나치 점령 후 체코슬로바키아 망명정부의 저항군에 공수부대원으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1942년 체코 망명정부가 "도살자" 라인하르드 하이드리히 암살작전(유인원 작전)을 영국 정보국의 도움을 받아 시행하자 이에 지원망을 공급하는데 참여하기로 하고, 체코 본토에 낙하산을 타고 투입되었다. 체코슬로바키아 망명정부는 독일 점령에 대한 체코 국내 저항의 존재를 보여주고 타격을 가하기 위해 하이드리히 암살을 계획했다.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는 SS의 핵심 인물이자 보헤미아-모라비아 보호령의 부총독(총독 대행)으로 체코를 가혹하게 통치한 인물이었으며 홀로코스트의 고안자 중 한명이었다. 5월 27일 프라하에서 하이드리히의 메르세데스가 급커브를 도는 순간 암살자 중 한명인 가브치크가 스텐 기관단총으로 하이드리히를 쏘려 했지만 총이 고장났다. 그러자 다른 한명인 쿠비시가 대신 개조한 대전차 수류탄을 차량에 던졌다. 폭발로 하이드리히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처음에는 살아남는 듯했지만 결국 6월 4일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분노한 나치는 별로 관련도 없었던 리디체와 레자키 두 마을을 암살을 도왔다는 의혹만으로 본보기로 학살하고 여성과 아이들도 강제수용소 등으로 끌려갔다. 이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연관 의혹으로 처형당했다. 그러자 추르다는 동지들의 암살 성공 이후 자신과 가족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결국 자수, 동지들의 명단과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게슈타포에 팔아넘기고 1000만 크론을 받기로 했다. 이로 인해 이들을 숨겨줬던 일가족과 신부는 게슈타포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했다. 6월 18일 약 800명의 독일군과 경찰이 7명의 동지들이 숨어있던 성당을 포위했다. 이때 추르다 본인이 항복을 권유했지만 이들은 "우리는 체코인이다. 절대 항복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거부했다고 한다. 약 6시간 동안 독일군과 교전을 벌였고 독일군은 소방 호스를 이용해 지하실에 물을 채우고 환기구를 통해 공격했고 결국 7명 전원 장렬히 전사했다. 이후에도 추르다는 밀고자로 일하며 나치의 철저한 색출로 체코 저항운동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이후 "카를 예어호르트"로 이름을 바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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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레지스탕스에서 나치 앞잡이로 변절한 배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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